2020. 5. 3. 부활 제4주일(성소주일) -가해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요한 10,1-10

지난 3주간에 걸쳐서 우리는 독서와 복음말씀들을 통해서 주님의 부활과 그 의미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 네 번째 주일은 소위 ‘선한 목자 주일’이라고 불리는데, 매해 복음서의 내용이 착한 목자의 비유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은 양 떼를 돌보고 이끄시는 목자로 상징되었고, 이는 신약에 와서 새로운 백성을 이끄시는 그리스도께 적용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좋은 목자’이신 주님께 일생을 바칠 젊은이들, 즉 ‘사제 성소자들’과 ‘수도 성소자들’을 위하여 특별히 기도를 바쳐야겠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의 위기 속에서 환자들을 방문하고 위로하다가 감염되어 안타까운 목숨을 봉헌하신 많은 사제들과 수녀님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를 양떼들의 ‘목자’이며, 양들이 지나는 ‘문’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자’란 양떼를 돌보고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목자는 단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위해서 아흔아홉 마리의 양떼를 남겨두고 애써 길을 나서는, 일반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매우 미련한 목자입니다. 단 한 명의 영혼이라도 포기하지 않 으시는 하느님의 의지를 보여주시는 비유겠지요.

그리고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내용인, 내일 복음에도 자세히 나오지만, 이 ‘목자’는 자 기 양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바치는 ‘착한 목자’입니다. 한낱 동물에 지나지 않는 양을 위 해서 귀중한 사람의 목숨을 바친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10,11)

‘착한 목자’에서 ‘착한’의 희랍어 원문은 ‘칼로스’(kaloj, )입니다. 그런데 이 ‘칼로 스’(kaloj, )를 ‘착한’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본래의 뜻을 축소시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칼로스’(kaloj, )는 ‘좋은’이라는 뜻도 있으며, ‘완전한’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가나 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는 기적을 일으키시자, 사람들이 “이렇 게 좋은(완벽한) 포도주가 아직까지 있다니”하면서 감탄하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좋 은’이 바로 ‘칼로스’(kaloj, )입니다. 이를 ‘착한 포도주’라고 번역하면 좀 이상하지요.

(70,80 년대 아직 통일벼 먹던 시절, 쌀밥이 지금처럼 맛이 없어서, 몇몇 부 자들은 미8군 PX에서 파는 쌀을 사다먹었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 미제 쌀이름이 바로 ‘칼로스 쌀’이였음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어떻든 ‘칼로스(kaloj, )한 목자’라고 할 때, 이는 ‘좋은’ 이상의 ‘완전함’이라는 뜻을 내 포하고 있습니다. 즉 아흔아홉을 놔두면서까지 한 마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목자의 완 전한 모습이며, 한낱 양 한 마리를 위해서도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이 바로 목자의 완전 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목자를 설명하기 위해서, 당신 자신을 양들이 지나가는 ‘문’이라 고 부가설명 하셨습니다. 이 ‘문’이라는 표현도 역시, 오늘 복음인 요한복음 외에 공관복 음들(마르코, 마태오, 루가)에도 자주 나오는 표현입니다. 특히 이 문을 일컬어서 ‘좁은 문’(마태7,13; 루가13,24)이라고 하지요.

이 ‘문’이라는 단어의 경우, 성서가 쓰여진 희랍어 원문으로는 ‘튀라’(qu,ra)입니다. 그 러니 우리는, 환란과 역경 속에서 그리고 유혹에 처하거나 악의 위험에 처했을 때, 튀더 라도 예수님이라는 ‘문’으로 튀어야겠습니다. 문으로 ‘튀라’(qu,ra)!!!

우리는 일반적으로 ‘목자’와 ‘양떼’를 생각하면, 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넓은 들판 에서, 양들이 싱싱하게 자라난 푸른 풀을 한가롭게 뜯고 있는, 그야말로 알프스 소녀 하 이디가 뛰노는, ‘목가적인 풍경’을 연상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활동하셨던 이스라 엘에서는, 비가 매우 적게 내리는 광야 변두리 지역 같은 곳에서 양떼를 쳤습니다. 햇볕 이 뜨겁게 내리쬐는데 마실 물도 푸른 풀도 별로 없고, 이따금 강도마저 등장하고 이리 떼도 출연합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착한 목자’를 떠난다는 것은, 문이 아닌 다 른 곳으로 울타리를 넘나드는 것은, 양떼들에게는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착한 목자’를 모시고 있다는 것은 생명에 이르는 길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파란 하늘 아래 시냇물 졸졸 흐르는 평화로는 들판은 결 코 아닙니다. 어쩌면 광야와도 같은 곳일 수도 있습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 는다.”하신 복음서의 말씀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면서, 하느님 나라를 향한 이 거친 여정 길에서 무사히 목적지에 잘 다다를 수 있도록 ,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목소리를 세상 의 소음들 속에서 잘 구분해서 알아듣고 잘 따를 수 있는 착하고 성실한 양이 될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합니다.

-우용국 실비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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