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5.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주님,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마태오 10,17-22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대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어떠한 역경과 시련과 박해를 겪을지라도 아무 걱정하 지 말고, 오직 성령의 이끄심에 맡기라’라는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순교자 김대건 신부님이야말로 예수님의 이 말씀을 온 몸으로 살아가신 분이십니다.

예전에 평화방송에서 추석 특집으로 『성 김대건』이라는 특집 드라마를 했습니 다. 드라마를 보면서, 많은 점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스물여섯의 나이로 순교를 앞둔 성인께서 주님께 기도하는 내용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주님, 제 나이 겨우 스물 여섯입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

순교자들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특히 성직자의 신분으로 순교하신 분들을 생 각해보면, ‘꼭 순교해야 됐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고생 끝에 어렵 사리 사제가 되었는데, 죽는 것보다는 살아서 오랫동안 일하는 것이 교회를 위해 서 더욱 좋은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입니다.

실제로 조선에서 성직자들이 순교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외국에서는 비판의 목 소리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앵베르 주교, 샤스탕 신부, 모방 신부가 포졸들에게 자수한 것은 올바른 행동이 아니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대건 신부님께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 부제였을 때, 신학교 신부님에게 보낸 편지가 전해지고 있는데, 잠시 읽어 드리겠습니다.

신부님들은 신자들의 영혼과 육신의 “ 구원을 열성적으로 돌보았습니다. 또 신 자들은 신부님들을 보호하려고 힘껏 애썼습니다. 그러나 신부님들은 자진하여 포 졸들에게 가셨습니다. 달리 행동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신부님들은 일시적으로 피할 수는 있었겠지만 당신들이 구하려고 온 자기 양들을 위하여 많은 환난을 무릅쓰고 죽음의 길로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판 단으로 그것은 과오가 아니라 덕행이었습니다.

신부님들은 신자들이 사제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고 또 그들의 목 숨이 귀중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부님들은 당신들이 죽은 다 음에 목자 없는 양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장차 이리와 늑대들이 주님의 양떼를 잡 아먹으리라는 것을 예견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부님들은 죽음의 길로 떠날 준비를 하였습니다. 신자들이 몰려와 슬 픔에 젖어 목자들을 바라보면서 자기들을 고아로 남겨놓고 죽음의 길로 떠나가지 말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신부님들은 어머니와 같은 애정으로 성서의 말씀을 들려 주면서 그들을 위로하였고, 자기들은 하느님의 명령으로 죽음의 길을 간다고 타 일렀습니다.
마침내 신부님들은 미사성제를 봉헌한 다음 길을 떠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양 들에게 작별인사를 하였습니다. 신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이제는 더 이상 목자 들을 뵐 수 없게 되었음을 통곡하였습니다.

한양으로 끌려온 신부님들은 모두 의금부에 투옥되었습니다. 그들은 고문을 많 이 받았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잘 참아냈고 지극히 가혹한 고통 중에도 주 그리 스도를 용감히 증언하였습니다. 그들은 조국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이 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저버리라는 경고를 받았지만 더욱 큰소리로 하느님을 증언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더욱 참을 수 없는 가혹한 고문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든 형벌을 극복하고 사형을 선고받고 거룩한 피를 흘려 순교함으로써 하늘나라로 개선하였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영원히 다스릴 것입니다.”

김대건 부제는 이 글을 쓰면서 자신의 운명도 곧 이들과 같을 것이라는 것을 예견했을까요 어쩌면 당시의 상황이 워낙 ? 절박하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예상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예상이 그토록 일찍 현실로 다가올지는 몰랐을 것입니다.

김대건 부제는 사제품을 받고 조선 땅에 입국하였지만, 불과 몇 개월 만에 포 졸들에게 잡혀서 순교하였습니다. 아깝게도 겨우 13개월 동안만 사제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나마 2개월은 조선에 입국하기 위하여 바다 위에서 보냈고, 또 4개월 은 감옥에서 지내다가 순교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사목활동은 거의 할 수 없었습 니다.

올해는 김대건 신부님이 순교하신지 174년이 되는 해입니다.
174년전 그때에, 정식으로 서양학문을 배운 최초의 한국인이었으며, 라틴어, 희랍어, 불어, 영어, 중국어를 알았던 유식한 청년이 김대건 신부님이었습니다. 말 타고 걸어서 한양가던 그 시절에, 전 세계의 1/3을 여행하였으며, 거친 바다를 나침반 하나로 헤쳐 나갔던 용감한 청년이었습니다. 중화사상에 젖어서 세상을 볼 줄 몰랐던 그 시대, 우주와 세상의 크기를 알았고, 태초의 원인을 깨달았고,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그리고 영원한 진리가 무엇인지를 고민 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이토록 학식과 교양과 경험을 겸비한 인물이었기에, 조정에서는 그를 ‘소중화 의 공자(조선의 공자)’라고 까지 불렀으며, 어전회의에서는 그를 국가의 인물로 아 끼고자 했습니다. 배교만하면 고위 관직에 중용하겠다는 약속도 서슴지 않았습니 다. 절세미인을 불러 아내로 삼게 해 주겠다 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 부님은 온갖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오늘 복음말씀대로 오직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행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사회괴수’라는 죄목으로 ‘군무효수’라는 당시 법정최고형을 선고받아 젊은 생을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을 생각하면 아깝고 너무 아까워 억울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성 령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뛰어 넘는 것 같습니다. 그래 서 오늘 복음 말씀대로 ‘미리 걱정하지 말고 성령께서 하시는 대로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죽기 직전에 “나의 영원한 생명은 이제 시작합니다” 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말씀은 현실로 이루어져서, 174년이 지난 현재, 그의 후손들은 서울교구만도 해마다 서른명의 사제들을 낳고 있는 세계적 인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사목은 결코 13개월에서 끝난 것이 아 니라, 174년 이상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더 이상 신앙 때문에 순교할 필요가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신 앙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어렵기는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오히려 지금의 복잡하고 혼란한 세상이, 온전한 신앙을 간직하기에는 더욱 어려 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일 수록 예수님 의 말씀을 더욱 기억합시다. ‘미리 걱정하지 말고, 성령의 이끄심에 맡기며 살라’ 는 그 말씀을 잊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순교성인들의 후예답게, 이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 신앙의 빛 을 전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참신앙인으로서 영원한 삶을 이어갈 수 있어야겠습니 다.

순교자 김대건 사제와 한국의 순교성인들이여, 이 어지러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우용국 실비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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