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26. 사순 제4주간 목요일

호기심과 믿음 요한 5,31-47

최근에 인기 있는 소설이나 영화들을 보면, 교회에 대해서 대중들의 호기심을 살만한 것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오래전에 떠들썩했고 영화로도 개봉되었던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이 그렇지요. 또 우리나라 영화로도 구마를 주제로 한 ‘검은 사제들’이 큰 인기를 끌 기도 했습니다. 작년에도 드라마 ‘열혈 사제’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줬으며, 이 외에도 많은 영화들과 소설들을 보면, 교회의 전통과 역사를 상상력과 섞어서 흥미롭게 만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온갖 성서 구절들과 각종 라틴어 기도문뿐만이 아니라, 화려한 마귀 퇴치술, 십자가상의 예수님을 찔렀다는 롱기루스의 창, 하느님의 은총을 쉽게 얻는다는 이유로 인간을 질투하는 가브리엘 천사, 그리고 지옥의 왕 루시퍼가 담배 회사 주주라는 설정처럼,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지적인 호기심만 채울 뿐, 정작 중요한 한 가지만은 전혀 다루지 않고 있었습니다. 바로 성서 전체와 교회가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최근 유행하는 대중작품들을 보면, 성서와 교회를 다루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은 어디하나 들어갈 곳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주제는 따분하고 고리타분하게 여겨지고 있고, 아니면 자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돈벌이가 안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성서 전체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뿐만이 아니라, 모세를 비롯한 모든 예언자들의 예언들도 결국 에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며, 예수님 친히 행하신 모든 일들은 더할 나위 없이 그분 이 그리스도임을 계시하는 사건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구체적으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비롯해서 성서와 율법에 정통 한 사람들은, 성서를 읽고 파고들면서도 그 성서가 말하고자 하는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성서를 읽고 공부하면서도, 그 성서가 증언하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이들은 모세의 기록을 믿었지만, 그 믿음은 단지 지성적인 차원이었을 뿐, 정서적이고 의지적인 믿음은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도 혹시 유다인들의 믿음과 다르지 않은지 반성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성서와 계시된 가르침들을 매일 매일 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성적인 믿음도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구세주의 수난이나 부활과 같은 것들은 인간이 저절로 알 수 있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하겠지요. 그러나 여기에만 그친다면, 과연 그 믿음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겠 습니까?

따라서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그칠 것이 아니라, “예수는 나에게 누구인 가?”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하겠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성서를 믿는 것이 아니라 성서가 증언하는 그분을 믿는 것이요, 전통 을 믿는 것이 아니라 전통이 전해주는 그분을 믿는 것이며, 교회를 믿는 것이 아니라 교 회가 선포하는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정서情緖와 의지를 다해서 믿는 것, 세상의 셈법을 따르지 않고 조건이 어떠하든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철석같이 믿는 것, 우리가 복음서를 통해서 배워야할 것은 바로 이런 의지적인 믿음일 것입니다.

이 사순절동안, 특별히 코로나-사순시기를 지내며 교회와 물리적인 거리를 두면서 지내고 있는 이 시기동안, 나의 믿음은 과연 어떤 것인지 잘 살펴보고, 나를 위해 기꺼이 수난하신 주님을 묵상하며, 그분과 일대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겠습니다.

-우용국 실비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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