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24. 사순 제4주간 화요일

낫기를 원합니다. 요한 5,1-16

오늘의 병자는 기적의 샘물로 알려진 예루살렘 베짜타 주변에 앉아 있었습니다. 때때로 주님이 천사가 내려와 연못 물을 움직이는데,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 가는 병자는 어떤 병이든 낫는다는 전설의 베짜타 연못입니다. 그는 무려 삼십팔 년 이나 앓아 왔으며, 몸을 도저히 움직일 수도 없는 중증환자였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병자였기에, 물이 움직여도 혼자의 힘으로는 물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온갖 소경과 절름발이들과 중풍병자 등 수 많은 다른 사람들은 물이 움직일 때 저마다 앞으로 다가갈 수 있었지만, 자기 자신은 다른 사람 의 도움이 없으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없고, 오기가 생겨 혼자 힘으로 기어서라 도 물에 들어가려면, 벌써 딴 사람이 먼저 들어간 이후였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무관심한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병자들에게도 원망과 미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미움… 죽지 못해 살아가는 비참함…
이렇게 병자의 마음은 원망과 미움으로 인해 날마다 독기와 악으로 채워졌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연못가를 지나시다가 누워 있는 병자를 보았습니다. “낫기를 원합니까?” 그러나 병자는 “낫기를 원합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원 망어린 신세한탄을 늘여놓을 뿐입니다. 불신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자신 이 낫기를 원한다는 애초의 간절함도 이미 잊혀진 뒤였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사람들 에 대한 ‘원망과 미움’은 ‘낫기를 원함’보다 병자의 마음에 더욱 가득 차 있었던 것입 니다.

이 병자에게 필요한 것은 병의 치유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병보다는 어느새 깊어 진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것이 더욱 절실했습니다. 이런 병자에게 예수님은 스스로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육신의 병은 이 한 말씀으로 치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상처받은 마음의 상처를 낳게 하시기 위해서 말씀하십니다. “자, 지금은 병이 말끔히 나았습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더욱 흉한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병자는 자신의 병이 육신의 병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원망과 미움이라는 마음 의 병까지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윤리 신학적으로는 ‘죄罪’라고 말할 수 있 겠지요.

우리는 흔히 육신은 중요하게 여기면서, 정신과 마음의 상처는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경제문제로 인상을 찌푸리는 식구들, 환자를 인격체 가 아닌 물질적인 유기체로만 진단하려는 몰지각한 의사들…

저는 부제 때, 1급 시각장애인 한 분을 만난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분과의 만남 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1급이면 빛도 느낄 수 없는 완전 맹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은 원래 장애인은 아니었습니다. 명문대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외국에 유학을 준비하는 중 어느 날 자신의 눈에 이상이 생겼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곳을 찾아 다녔고 온갖 노력을 해보았지만 시력은 계속 나빠졌으며 1년 만에 결국 완전 실명하 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랫동안 하느님을 원망하였지만, 어느 날 자신의 육신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크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자신이 행복하 지 못할 이유가 없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얗게 내리는 눈은 보지 못하지만, 신 기하게도 눈 쌓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가을단풍은 못 보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소리는 들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점차 시력이 아닌 다른 오감으로써 세상을 더욱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분이 악수를 건네면서 저에게 첫인사로 건넨 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부제님, 참으로 미남이십니다.”

각박하고 힘든 세상일 수록 여유롭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용국 실비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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